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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맨 (2016, PS4)카테고리 없음 2020. 8. 28. 00:17
에이전트 47이 되어 세계의 거물들을 암살하는 정통 잠입액션 게임, 히트맨.
내가 여태까지 해본 잠입액션 게임 시리즈들은 메탈 기어 솔리드, 어쌔신 크리드, 디스아너드, 그리고 히트맨이다. 메기솔은 잠입액션 계의 대부인데, 솔직히 메기솔은 4부터 잠입액션 요소가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어크도, 분명히 주인공은 암살자인데 게임플레이는 파쿠르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인상을 받았다 (심지어 오리진이랑 오디세이는 전투가 핵심이라는 게임평들도 봤다).
최근작들 중에서는, 히트맨 시리즈가 캐릭터 은신과 같은 잠입 요소를 가장 잘 만들어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암살 타겟을 직접 총으로 쏘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변 사물들을 활용해 간접적으로 암살하거나 경비들의 시선을 돌리는 등 게임이라는 틀 내에서 잠입과 암살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을 다채롭게 구현해서 넣었기 때문이다. 2016년에 출시된 히트맨을 플레이해보면서 느낀 점들을 적어보았다.
잠입-암살-탈출이라는 기본 틀 내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히트맨은 여섯 개의 큰 스테이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프롤로그와 보너스 미션까지 하면 열 개 정도), 각 스테이지는 공통적으로 타겟에 접근한 뒤 (잠입), 타겟을 제거하고 (암살), 마지막으로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오는 (탈출) 순서로 진행된다. 타겟은 보통 경비에 둘러쌓여 있거나 보안상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장소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맵의 여러 요소들을 잘 활용해서 주변의 의심을 사지 않고 타겟에게 조용히 접근 및 암살하는 것이 이 게임의 전체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게임은 자유도가 없는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모든 스테이지가 비슷한 구성을 가지며, 각 스테이지에서도 정해진 암살 목표를 제거하는 일 외에 다른 컨텐츠나 어떠한 서브퀘스트도 없다. 컨트랙츠라는 별도의 모드가 있긴 하지만, 이 쪽은 본편에서 쓰인 스테이지들에 암살 타겟만 다르게 지정하는 샌드박스 모드라 개인적으로는 별로였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쭉 해보면, 생각보다 할게 많다. 매 스테이지마다 하는 일은 결국 암살이지만, 이 암살을 할 수 있는 환경과 방법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첫판은 맵의 구조를 익히면서 쉬운 방법으로 타겟을 죽이고, 둘째 판부터는 이리저리 탐험을 해대면서 복잡한 암살 방법을 고민하는 맛이 있다. 게임을 딱 한 번만 깨고 바로 넘어가는 성향의 플레이어라면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이긴 한데, 나처럼 게임의 숨은 요소를 모두 찾아내는 것에 환장한 사람한테는 굉장히 잘 맞는 스타일의 게임이다.
여기서 히트맨 시리즈의 대표적인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이 빛을 발휘한다. 바로, NPC의 옷을 훔쳐서 변장하는 것이다. 기절시키거나 죽인 NPC들로부터 옷을 뺏을 수 있는데, 단순히 겉모습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맵의 특정 장소들은 기본 복장 상태에서는 출입이 안 되지만, 해당 장소에 맞는 복장을 착용한 상태라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이 변장 기믹은 시리즈 대대로 있어왔던 상징적인 요소로서, 본작에서도 역시 게임플레이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믹이라 보면 된다. 변장을 일부러 안하는 업적을 노리는게 아닌 이상, 어지간하면 변장을 한 체 잠입을 하는 게 유리하다.
변장은 기믹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구조상 이 게임은 자유도가 낮고 정해진 경로만 따라가야 하는 게임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이 변장 기믹이 의외로 게임플레이의 자유도를 높이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어떤 변장을 하느냐에 따라, 가능한 잠입 경로와 암살 방법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스테이지의 특성을 살린 복장이나 스테이지에서 벌어지는 스토리와 관련된 복장을 획득할 수도 있어, 은근히 몰입감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닌자나 뱀파이어 마술사처럼 맵이랑 대놓고 안 어울리는 병맛 컨셉의 복장도 있다...)
변장 뿐만 아니라, 이 게임에서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항상 여러 가지다. 타겟을 암살하거나, 잠긴 문을 열거나, 경비 사이를 통과할 때도, 당연해보이는 루트 말고 색다른 방법이 꼭 존재한다. 이렇게 선택지를 줌으로써, 모든 스테이지가 기본적으로 같은 구성을 갖지만 마치 오픈월드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잠긴 문 열쇠를 못 찾아서 대신 폭탄을 터뜨려가지고 열고 있다;; 일부러 타겟이 도망가게 만든 다음에 대포로 경비행기를 격추해서 암살할 수도 있다 실존하는 장소를 충실히 재현한 맵
꼭 잠입액션 요소를 따지지 않더라도, 이 게임은 스테이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탐색하는 맛이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맵이 실존하는 나라의 도시나 지역을 테마로 하고 있다. 히트맨 시리즈의 이전작들도 실제 지역을 모티브로 한 스테이지는 자주 있었는데, 이번 게임에서는 아예 본격적으로 각 스테이지마다 특정 국가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 티가 난다. 다 열거해보자면, 파리 (프랑스), 아말피 해안 (이탈리아), 마라케시 (모로코), 방콕 (태국), 콜로라도 (미국), 그리고 홋카이도 (일본). 잠입액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어드벤쳐 게임마냥 맵 구석구석을 보고 감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콕맵에서 코끼리 황금 동상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코끼리가 태국에서 신성하게 모시는 동물이라고 한다. 고작 코끼리 넣은 게 무슨 어려운 일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장르도 아니고 암살게임에서 이런 디테일에 신경썼다는 점은 꽤 멋지다고 생각한다.
섬뜩하게도 코끼리가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업적이 있는데, 실제로 태국 현지에서 코끼리 학대가 문제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맵을 탐색하는 것이 오직 풍경을 즐기는 데에만 의미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게임플레이 측면에서 봐도, 잠긴 문을 따는 열쇠를 찾거나 숨겨진 통로를 찾는 등 게임 진행을 위해 맵을 꼼꼼하게 뒤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타겟 독살용 쥐약 같은 아이템들은 맵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데, 엉뚱한 곳에 숨겨져 있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럴 듯한 곳에 놓여져 있어서 나름 추리하는 재미도 있다. 또한, NPC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 판을 깨기 위한 힌트를 얻거나 스토리 배경에 대한 잡설을 들을 수도 있다.
쥐약은 말 그대로 쥐 잡는 용도로 주방이나 창고 구석에 구비되어 있다 그냥 깨는 건 쉽게, '멋잇게' 깨는 건 어렵게
히트맨 시리즈 중 본작에서 새로 도입된 시스템으로 Opportunity라는 것이 있는데, 경비가 삼엄한 구역에 진입하거나 타겟을 암살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안내해주는 일종의 가이드 시스템이다. 그저 초보자 도우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이드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컷신과 이벤트가 있기 때문에 게임에 숨겨진 요소를 모두 즐기기 위해서는 각 맵별 가이드를 적어도 한번씩은 해보는 것이 좋다. (가이드도 맵마다 여러 개가 있다)
가이드를 밟는다고 게임이 모든 걸 다 해주는 건 아니다. 적을 기절시켜서 복장을 빼앗거나 감시망을 피해 아이템을 입수하는 일과 같이 플레이어의 실력이 필요한 부분은 여전히 플레이어의 몫이다. 다만 어떤 복장을 입어야 하고 어떤 아이템이 어디에 있는지 등 정보를 게임에서 직접 안내해주기 때문에, 확실히 가이드를 따라가게 되면 그 스테이지는 상당히 쉬워진다. 실제로 유저평을 찾아보면 이 가이드 시스템이 게임의 자유도와 난이도를 망쳤다는 의견들이 있고, 게임 옵션 상에서 가이드 시스템을 완전히 비활성화시키거나 가이드의 정도를 최소로 설정하는 것이 낫다고들 얘기한다.
그런데 이 게임이 애초에 한번 깨고 마는 식으로 설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이드 시스템을 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잠깐 역사 얘기를 해보자면... 이 게임의 이전작인 히트맨 앱솔루션의 스토리 모드는 상대적으로 버라이어티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출시가 된지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본 스토리 모드 말고 오히려 컨트랙츠라는 샌드박스 모드가 더 인기 있었다고 한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컨트랙츠 모드의 전신이라고 보면 된다). 컨트랙츠 모드는 스토리에 사용된 맵 중 하나에서 임의의 NPC를 암살 타겟으로 지정한 후 새로운 스테이지 형태로 다른 유저들에게 (온라인으로) 배포하는 모드였다.
본작에서도 컨트랙츠 모드를 통해 유저들의 창의적인 개소리를 구경할 수 있다 게임사에서는, 스토리 모드보다 이 샌드박스 모드를 유저들이 더 즐긴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이번 게임에서는 아예 본 스토리 모드의 스테이지들부터 샌드박스 느낌이 나도록 제작했다고 한다. 즉, 플레이할 때마다 유저가 원하는 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많은 선택지를 만들어놓고 다양한 공략 루트를 마련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루트를 다양하게 만들다 보니 유저 스스로 찾기에는 난해한 루트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루트를 찾기 쉽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가이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루트에서 출발해 다시 또 창의적으로 접근하면 별 희한한 방법으로 암살을 성공시킬 수 있다.
신박한 학살.. 아니 암살 루트들은 우선 가이드를 따라 타겟을 유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트로피 얻기: 암살은 쉽고 수수께끼 푸는게 더 어렵다
이 게임의 모든 트로피를 얻기 위해서는 각 스테이지마다 주어지는 챌린지라는 미니 업적들을 어느 정도 달성해야 한다. 단순히 타겟을 특정 방법으로 암살하는 챌린지도 있는 반면, 맵에서 발생하는 이벤트를 목격하는 (암살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챌린지도 있다. 게임을 100% 클리어하려면 이 챌린지들을 싹 다 달성해야겠지만, 차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아서 나는 그냥 트로피들을 얻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바다괴물 크라켄을 소환하는 챌린지.. 너무 뜬금없었다 각 챌린지 달성 방법은 챌린지의 이름과 설명, 그리고 이미지 한 장을 통해 유추해야 하는데, 그냥 방법을 대놓고 알려줄 수도 있었겠지만 챌린지 설명은 마치 수수께끼를 하듯 일부러 꼬아서 힌트를 주는 형태다. 플레이어가 히트맨 게임을 퍼즐게임 식으로 접근하게 유도한다는 전체적인 게임 컨셉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유명한 영화나 드라마, 소설의 한 장면을 암살이나 기타 요소로 만든 뒤 이를 가리키는 짧은 구절을 챌린지의 이름으로 넣는 식이다.
꽤나 재치 있는 게임 요소라는 생각이 드는데, 게임플레이 측면에서는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다. 아는 내용의 챌린지를 볼 때에는 "어..? 이걸 이렇게 넣네ㅋㅋ"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모르는 내용의 챌린지의 경우에는 인터넷으로 공략을 보지 않는 이상 혼자 힘으로 달성법을 알아내기는 힘들다. 심지어 어떻게 운 좋게 달성했다 하더라도, 어떤 내용이었는지 모르니 업적을 달성했다는 느낌 조차 안든다. 문제는, 정말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작품만 가지고 구성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워낙 챌린지 개수가 많다 보니 때로는 일부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만 친숙한 작품에 대한 챌린지도 넣었다는 것이다.
결론: 정통 잠입액션의 길을 잃지 않고 잘 구현한 게임
이 게임을 시리즈 초반 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대도서관이 아프리카TV 시절에 히트맨 블러드머니를 깨던 것을 보다가, 2016년에 마침 히트맨 신작이 나왔길래 혹해서 샀는데 엄청 재밌었다 (그렇다.. 2016년에 처음 플레이한걸 이제와서 다시 잡고 리뷰하고 앉아있다). 잠입 요소가 들어간 게임은 그 때도 지금도 정말 많이 나오지만, 대부분 어드벤쳐나 액션, RPG 장르에서 잠입이 부수적으로 들어갈 뿐이라서 히트맨처럼 잠입이 메인인 게임이 오히려 내 눈에 더 띄었던 같다.
그리고 벌써부터 후속작을 사놓고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이 게임을 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말이 후속작이지 히트맨 2는 이미 2018년에 출시되었다). 메기솔5 이후로 정통 잠입액션에 목말라 있었는데, 이 게임이 딱 가려운 구석을 잘 긁어준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히트맨 3가 2021년 출시로 예고된 상황인데, 출시되기 전에 얼른 히트맨 2를 다 깨놔야겠다.
이 게임은 플래티넘 트로피가 없어서 대신 골드 트로피 스샷으로 만족하기로..